유럽의 동쪽에 있는 여러 나라들은 (독일, 오스트리아 등) 17세기에 이르러서야 절대 왕정 체제가 이루어졌습니다. 독일의 전성기는 프리드리히 2세 때 였고, 오스트리아의 전성기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이 군림할때, 그리고 러시아의 경우에는 표트르 대제일때 전성기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는 16세기 중반 쯤 앙리4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절대 왕정 시대를 맞이 했는데요. 이후 17세기 중반 무렵 루이 14세가 왕이 되면서 프랑스 왕정시대 절정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

 

태양왕 루이14세 그는 누구인가?

루이 14세 (1638년 9월 5일 ~ 1715년 9월 1일) 의 본명은 루이 디외도네 입니다. 프랑스의 왕으로 1715년 죽음에 이를때까지 왕위에 있었던 자로 72년 3개월이라는 유럽에서 가장 긴 재위기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태양왕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요,  [국왕의 권력은 신에게서부터 받는것]이라는 왕권신수설이라는 학설을 지지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또다른 이유가 있는데요. 그 이유는 아래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 짐이 곧 국가다

"짐이 곧 국가다" 라는 말로 절대 군주의 자리를 다졌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로 이러한 말을 했다는 증거는 없고 루이14세의 정적들이 퍼뜨린 것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 최초의 하이힐을 신은 왕

알려진바로 루이14세는 키가 작아서 이에 대한 콤플렉스가 굉장히 컸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이힐을 최초로 신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귀족들이 따라 신으면서 유행이 되었다고 합니다.

 


태양왕 별명을 얻게 된 이유

 

1653년 프랑스 파리에 있는 '쁘띠부르봉' 이라는 극장에서 특별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총 13시간 짜리의 공연이 펼쳐진것인데요. 이 엄청나게 길었던 발레 작품에 15세의 나이였던 루이14세가 등장을 했습니다.

 

이때 그는 태양신 아폴론 역할을 맡아 연기를 했는데요. 발레 복장은 태양신 답게 황금빛 옷으로 이루어졌고 태양을 뜻하는 화려한 왕관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는 마치 진짜 태양이 된것처럼 발레 연기를 펼쳤다고 합니다. 자신의 이미지를 굳이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었죠.

 

 

 

- 당시 유럽에서는 별명이 붙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비슷한 이름을 많이 가졌기 때문에 특별한 별명을 붙여서 정확하게 구분을 하기 위함이었는데요. 보통 신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이나, 성격에 맞는 별명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령 신앙심이 강했던 루이왕은 [경건왕 루이] 라는 명칭으로 불렸고, 용맹한 리처드는 [사자심왕 리처드1세], 영토를 많이 잃은 왕은 [실지왕 존] 머리 숱이 많이 없었던 샤를왕은 [대머리 샤를] 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루이14세는 무대에서 태양신 연기를 했던터라 [태양왕] 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함께 무대에 올랐던 무용수들은 전분 발레리노가 아니라 '귀족' 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무대에 오르기도 했고. 또 당시 발레리노로써 무대에 오라는것은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 여겨졌습니다.

 

중세시대에는 국민들에게 매우 엄격한 삶을 살아갈 것을 가르쳤는데요, 춤을 추는 행동은 오직 귀족들에게만 허락된, 권력을 쥔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남자들만 가질 수 있었던 특권이었죠!

 

 


루이14세가 발레를 사랑한 이유

 

'발레' 하면 러시아가 떠오릅니다. 그래서 러시아 여행을 가면 발레 공연을 꼭 보는 사람들도 있죠. 하지만 루이 14세가 통치를 했을 무렵에 발레 강국은 프랑스 였습니다. 그는 어렸을때부터 발레를 배웠고, 무대에 오르는것이 이상하거나, 어려운일도 아니었죠.

 

 루이14세 왕은 발레 학교를 세우고, 발레리노라는 전문 직업이 생기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여자들도 발레를 시작할 수 있게 되면서 발레리나 라는 전문직업이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발레는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다가 여자들에게도 개방이 된 것입니다. 

 

 

루이 14세는 왜 발레를 좋아하고, 양성을 했을까요? 단순히 음악과 춤이 좋아서였을까요? 당시 왕이 발레에 집착을 했던 이유는 바로 발레 = 권력 이었기 때문입니다. 

 

루이14세는 베르사유 궁전을 건축한 이후 매일매일 성대한 파티를 열었습니다. 당시 귀족들은 이 파티에 참석을 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돈과 선물을 마련했고, 그로 인해 점점 경제적 / 정치적인 지위를 잃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점점 왕권이 강화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귀족들의 힘이 약해지면 왕의 힘이 강해지는것이죠.

 

루이14세는 발레를 사랑해서, 취미 생활을 하기 위해서 발레 공연과 파티를 벌였다기보다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왕권강화를 위한 정치적인 계략이었던 셈이죠. 

 

 


 

태양왕의 죽음

 

7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프랑스 왕 루이14세는 죽기 직전 "짐은 이제 죽는다. 그러나 국가는 영원하리라."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이어 왕이 될 '루이 15세'에게 전쟁을 일으키지 말고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힘쓰라는 유언을 남겼죠. 

 

77세로 생을 마감한 루이 14세. 왕이 죽었다는 소식이 퍼지자 프랑스 국민들은 애도를 표하기보다 드디어 해방이 되었다며 기뻐하였다고 합니다. 루이 14세가 어떻게 왕권을 휘둘렀는지, 국민들의 고난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후 혁명의 움직임이 시작이 되었고 1789년 (루이 14세가 죽고 74년 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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